글자가 아니라 사물로 봅니다
사주의 하늘 글자 열 개를 십간이라고 합니다. 물상론은 이 열 개를 각각 자연의 사물로 봅니다.
| 글자 | 사물 | 글자 | 사물 |
|---|---|---|---|
| 갑(甲) | 곧게 뻗은 큰 나무 | 기(己) | 기름진 밭 |
| 을(乙) | 감고 오르는 덩굴 | 경(庚) | 무쇠, 큰 바위, 도끼 |
| 병(丙) |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 | 신(辛) | 보석, 서리, 조각칼 |
| 정(丁) | 손닿는 곳을 밝히는 등불 | 임(壬) | 흐르는 큰 강 |
| 무(戊) | 볕에 달궈진 산, 마른 흙 | 계(癸) | 이슬, 샘물 |
짝을 지어 외우면 훨씬 쉽습니다. 갑은 뚫고 오르고 을은 감고 오릅니다. 병은 세상을 비추고 정은 손닿는 곳을 비추며 무언가를 만듭니다. 무는 높이가 있고 기는 없습니다. 경은 힘으로 쪼개고 신은 정밀하게 새깁니다. 임은 흐름이고 계는 흔적입니다.
땅 글자는 그 사물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발밑의 글자 열둘을 지지라고 합니다. 지지는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이 놓인 자리와 계절과 하루의 때입니다.
그래서 같은 병화라도 발밑이 여름이면 뜨겁게 내리쬐는 해가 되고, 겨울이면 낮게 걸린 흐린 해가 됩니다. 글자는 같은데 그림이 전혀 다릅니다.
여덟 글자를 각자 그리면 그림이 아니라 도감입니다
"큰 나무 하나, 무쇠 둘, 마른 흙 셋"은 도감입니다.
"마른 언덕에 선 나무 한 그루, 발밑에 잠긴 물"은 그림입니다.
사물들이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그림을 만듭니다. 도끼가 나무를 다듬고 있는지, 등불이 쇠를 달구고 있는지, 물이 마른 밭을 적시고 있는지. 그 관계가 그 사람의 결이 됩니다.
없는 것은 없는 대로 그립니다
여덟 글자에 물이 하나도 없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림에도 물이 없습니다. 마른 땅과 바닥이 보이는 우물을 그립니다.
불이 없으면 해를 그리지 않습니다. 어스름한 하늘로 둡니다.
비어 있는 자리를 예쁘게 메우면 그림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글과 어긋납니다. 그림과 글이 서로를 배신하면 둘 다 못 믿을 것이 됩니다.
다만 결핍을 폐허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물이 없다는 것과 말라 죽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앞은 사실이고 뒤는 판정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은 고요·여백·기다림으로 그립니다. 폐허는 "이미 끝났다"를 말하고, 여백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말합니다.
그리고 화면 어딘가에는 작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것 하나를 반드시 둡니다. 물이 지나갈 마른 도랑이든, 갈아 놓은 이랑이든, 아직 내리지 않은 두레박이든.
물상재가 이걸로 하는 일
물상재라는 이름이 물상을 읽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감정서를 지을 때마다 그 명식의 풍경을 한 폭 그려 표지에 앉히고, 그 그림을 50페이지에 걸쳐 풀어 드립니다.
저 언덕이 여덟 글자 중 무엇이고, 저 우물이 왜 하필 거기 있고, 그게 지금 이분의 무엇인지를 하나씩 적습니다. 그림에 있는데 글이 부르지 않는 사물은 남기지 않습니다.